'삶'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2.11 영화-모건프리먼 주연의 The bucket list
  2. 2007.07.17 어떤 삶이 좋은 삶일까요?
어머니로부터 출생하여 유년기를 보내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의무를 알게 될 때 자신의 부모와 같은 위치에서 아이들을 낳고 그들을 양육하다가 때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인생의 전 과정을 돌아보면 이 과정 중에 계속해서 떠오르는 문제 중 하나는 도대체 삶의 의미란 과연 무엇일까?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여러가지 가능한 대답 중 하나일 수 있는 한 편의 영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잭 니콜슨(Jack Nicholson)과 모건 프리먼(Morgan Freeman) 주연의 “The Bucket List”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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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카터(모건 프리먼)누군가의 인생을 평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세상에 남겨논 것으로 평가를 받는 사람이 있고, 신념으로, 사랑으로 평가받는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도 하는데 나에게 있어 인생은 나를 제대로 알아 주는 사람이 있느냐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에드워즈(잭 니콜슨)가 남은 마지막 삶을 누구보다 더 잘 살았다는 것이다. 눈을 감는 마지막 순간에 마음은 아주 넓게 열려 있었지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시작된다.


자동차 정비 기술자이지만 사랑이 가득한, 온전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카터와 대단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지만 수차례에 걸친 결혼과 이혼과 같은 정상적이지 못한 가정을 가진 에즈워즈와 같은 경제적, 가정환경적으로 상반된 2 사람이 같은 병동에 있으면서 뇌수술과 화학 치료등을 받으며 시한부 인생살다가 때가 되어 생을 마감하는 다소 무거운 주제일지도 모르는 스토리이지만 한편으로 보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영화였던 것 같다.

자신은 4번의 결혼과 일과의 결혼했다는 에즈워드의 말에 역사교수가 꿈이었지만 현실적인 상황(어리고, 흑인이고, 돈도 없고, 아이들이 태어나서) 때문에 그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고 말하는 카터.  이 영화는 경제적 관점에서 부의 양극단에 속한 2 사람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그러나 해보고 싶은 bucket list를 만들어 스카이 다이빙 하기, 히말리아 정상에 도전,타지마할 묘당, 만리장성, 홍콩 여행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시간들을 갖는다.
영화 서두에서 카터가 정의한 인생의 의미 곧,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기를 원하는 소망은 카터가 사망 후 에즈워즈가 카터와 함께 했던 수개월이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시간이었다고 고백하면서 더 확실히 조명되는 것 같았고 에즈워즈 역시 자신의 딸과 화해하고 생을 마감하며 bucket list의 마지막 일, “장엄한 것을 직접보기”, 날씨 때문에 직접하지는 못했지만 세상 지붕(히말리야산)에 올라 고요한 순간을 경험하는 일은 에즈워즈의 비서였던 토마스(Sean Hayes)가 이루어주면서 끝을 맺는 영화이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보기를 권하고 싶은 영화이다.

Posted by 원철연(체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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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마가 복음 4장 14절~20절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비유를 풀어주시고 계십니다. 즉 씨 뿌린다는 의미는 말씀을 전한다는 의미요.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사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비유를 보면 우리가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길가에 떨어진 삶입니다. 이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무관심한 사람들의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지를 가지고 전도하러 한번씩 나가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중에 하나님의 말씀에 무관심한 사람들, 세상에서는 예수님이 없어도 편안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예수님을 비방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삶이 곧 길가에 떨어진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부류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다시 말해서 전도, 교육, 인터넷과 같은 통신 수단, 대중 매체, 우리들의 올바른 삶의 모습 등을 통해서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둘째로 돌밭에 떨어진 삶입니다. 17절에 보면 말씀을 인하여 환란과 핍박을 받을 때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넘어지는 삶이라고 극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하는 자는 핍박을 받느니라" 이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사는데에는 핍박이 동반된다는 점을 말씀하고 계시면서 이러한 핍박이나 환란을 견디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상이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이러한 핍박이나 환란을 감당하지 않고 오직 축복만을 바라면 살고 있지는 않는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합니다. 마가 복음 8장 34절에 보면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을 것이니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삶은 복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핍박과 환란이 수반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고난을 견디어야만이 어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셋째로 가시떨기에 떨어진 삶입니다. 19절에 보면 세상의 염려와 물질적인 이익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하는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 말씀에 보면 이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예시가 하나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17절~22절에 보면 한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네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하늘에 보화가 넘치리라 그리한 후 예수님을 좇으라고 말씀하시니 그 사람이 재물이 많은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사람에게는 영생보다는 아니 예수님보다는 그 재물이 소중하였기 때문에 그대로 행치 못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 내용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 다른 가난한 자에게 주어야 되는 좀 극단적인 한 단면만을 보여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말세 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언젠가 베드로가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것처럼 결정의 순간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 때는 우리의 목숨 아니면 예수님을 버리는 두 가지의 선택 사항이 있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떨어진 삶입니다. 20절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열매를 통해서 그것이 사과나무인지 포도나무인지 그 종류를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아니 예수님을 알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참으로 갑진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을 모르고 선한 일과 같은 좋은 열매를 맺는다면 그것이 우리를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로 가는 길은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업느니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알았다면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좋아하시는 여러 가지 열매, 즉 전도, 찬양, 기도, 선행, 등의 열매를 맺어야 하고 또 많이 맺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결실의 양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노력하는 자의 몫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의 모습이 가장 좋은 삶의 모습일까요? 당연히 마지막에 언급한 좋은 땅에 떨어진 삶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항상 좋은 땅에 떨어진 삶처럼 항상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돌밭에 떨어진 삶, 가시떨기에 떨어진 삶을 살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삶 중에도 보이지 않게 주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고 지켜보고 계시며 좋은 땅에 떨어진 삶처럼 열매를 맺는 삶을 살길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믿음으로 인한 고난은 우리가 감내해야할 몫이자 의무입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열쇠이기도 하다는 점을 말씀드리면서 이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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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원철연(체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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